▶ 꽝응아이성 꽝응아이시 띤티엔사 카인럼촌 카인럼학살 위령비
▶ 1966년 8월 14일(음력), 꽝응아이성 꽝응아이시 띤티엔사 카인럼촌에서 일어난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주민 84명이 희생되었다. 새벽 무렵 한국군 1개 중대가 헬기를 타고와서 칸럼촌 북쪽 험산(Núi Hầm)에 내렸다. 한국군은 마을 곳곳의 방공호에 피신해있던 노인, 여성, 아이들을 밖으로 끌어내 총으로 위협하여 응우옌븡 할아버지 집 마당 바로 옆의 밭에 모은 뒤 오전 9시 경 총을 쏴서 주민들을 학살했다. 당시 학살에서 3명이 살아남았다.
▶ 정태환, 2019년 5월 8일 촬영
▶ 비고:
1) 위령비 건립 당시에는 띤티엔사가 선띤현 소속이었지만 행정구역 개편이후 지금은 꽝응아이시 소속이다.
2) 마을 이름이 ‘칸럼’으로도 알려졌는데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카인럼’이라고 적는다.
3) 1993년에 꽝응아이성 종합박물관이 작성한 ‘띤티엔사 칸럼학살 사건 유적 자료집’에 따르면 희생자 수가 82명이다. 그러나 학살 자료집 작성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카인럼학살 위령비는 희생자 수를 8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 꽝응아이성 꽝응아이시 띤티엔사 카인럼촌 카인럼학살 위령비
▶ 1966년 8월 14일(음력), 꽝응아이성 꽝응아이시 띤티엔사 카인럼촌에서 일어난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주민 84명이 희생되었다. 새벽 무렵 한국군 1개 중대가 헬기를 타고와서 칸럼촌 북쪽 험산(Núi Hầm)에 내렸다. 한국군은 마을 곳곳의 방공호에 피신해있던 노인, 여성, 아이들을 밖으로 끌어내 총으로 위협하여 응우옌븡 할아버지 집 마당 바로 옆의 밭에 모은 뒤 오전 9시 경 총을 쏴서 주민들을 학살했다. 당시 학살에서 3명이 살아남았다.
▶ 정태환, 2019년 5월 8일 촬영
▶ 비고:
1) 위령비 건립 당시에는 띤티엔사가 선띤현 소속이었지만 행정구역 개편이후 지금은 꽝응아이시 소속이다.
2) 마을 이름이 ‘칸럼’으로도 알려졌는데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카인럼’이라고 적는다.
3) 1993년에 꽝응아이성 종합박물관이 작성한 ‘띤티엔사 칸럼학살 사건 유적 자료집’에 따르면 희생자 수가 82명이다. 그러나 학살 자료집 작성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카인럼학살 위령비는 희생자 수를 8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