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낸 당신의 이름을 읽는 시간
- [월간봉화] 2023년 9월, 10월 -
* 한베평화재단은 매년 베트남 중부의 25개 한국군 학살 피해 마을에 평화의 꽃을 보내고 있습니다. 추도사업 부캐 ‘봉화(vòng hoa, 베트남어로 조화를 뜻함)’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국은 가을에 접어들었네요. 제가 있는 베트남 중부는 홍수의 계절을 지나고 있어요. 10월부터는 본격적인 우기이자 태풍이 자주 출몰하는 시기죠. 얼마 전에는 다낭과 꽝남성 일대에 집중 호수가 내려 집들이 침수되고 주민들이 대피를 했어요.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마세요. 베트남 중부 사람들은 매년 겪는 고난이기도 해서요. 베트남의 국민시인 탄타오가 「홍숫날 결혼식」이란 명시를 남겼을 정도로 이곳의 사람들은 우기와 태풍에 힘겨워하면서도 반짝이는 삶을 계속 살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조화를 마을에 전달하는 게 저의 일인데, 위령제 일정이 없어서 여름에는 쉬었어요. 그러다 추석을 전후한 9월 하순부터 위령제와 제사가 이어져 한 달 동안 4개 마을에 꽃을 전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난 곳은 꽝응아이성의
카인럼(9월 27일) 위령제였어요. 아침 7시부터 위령제가 시작되었는데 40명의 주민들이 위령비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향불을 올렸습니다. 카인럼 마을 촌장 띤 할아버지는 조화를 보내줘 고맙다고 하시면서 여건이 되면 위령비를 개보수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조화가 도착한 후 위령비 앞 제삿상을 챙기고 있는 촌장 띤 할아버지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요. 위령제라고 해서 사람들이 원한을 드러내거나 그러진 않아요. 위령비 앞에 한국에서 보낸 꽃이 놓이면 사람들이 물끄러미 꽃을 본답니다. 조화를 보내준 사람들의 이름을 읽는 거죠. 매년 잊지 않고 이렇게 기일을 챙겨줘 참 고마움을 느낀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 정도는 마을을 찾아와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을 지원사업에도 도움을 줬으면 하고요. 유가족들이 위령비를 개보수하고 싶어 하거든요. 나중에 한베평화재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낼까 해요.”
- 카인럼 마을 촌장 띤 할아버지
저는 늘 추석이 되면 꽝남성의
주이찐 마을이 떠오릅니다. 음력 8월 14과 15일에 걸쳐 학살 피해를 겪은 마을이라 추석에 희생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야 하거든요. 주이찐학살 피해생존자
도안응옥낌 아저씨는 다낭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석 때면 고향에 제사를 지내러 내려가시고 위령비에 놓인 한국 사람들의 조화를 보십니다. 아저씨는 올해 67세인데 최근 기관지염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들었어요. 다행히 몸이 회복되어 제삿날에는 고향을 찾을 수는 있었고요.
“(제삿날이 되면) 기분이 어떠냐구?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은 그렇게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아요. 다만 그리워, 그날 떠나버린 세 가족이 그립고 보고싶어요. 위령비를 찾아 분향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보낸 조화를 보면 그래도 기분이 좋아요. 고맙기도 하고. 먼 곳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평화의 마음이 있어서 여기까지 꽃을 보내준 거잖아요. 진보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나 같은 피해자나 유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고요. 사실 꽃을 보낸 사람들이 우리 베트남 사람들에게 직접 피해를 준 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참 큰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 주이찐학살 피해자 도안응옥낌
10월 17일
띤토 위령제 때에는 국지성 호우가 내릴 때였어요. 다행히 위령제 당일 아침에는 빗줄기가 가늘어져 꽃을 전할 수 있었는데 어쩌면 사람들을 못 만나겠다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위령비 앞에 우비를 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더군요. 지역의 간부들이 많았어요. 매년 조화 때문에 자주 연락을 했던 띤 씨가 빗줄기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저를 반겨주었답니다.
띤토학살 관련 2개 위령비에 참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 비가 와서 우비와 헬멧을 쓰고 참배를 했다.
“(‘고생이 많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생은 무슨. 우리는 좋은 걸요. 8시에 맞춰 사람들이 위령비에 와서 꽃을 기다렸어요. 띤토사의 당위원회, 인민의회, 인민위원회, 조국전선위원회, 여성회, 노인회, 인근 마을 촌장 등등 대표자들이 다 나왔죠. 올해는 비가 와서 사람이 적은 편이에요. 위령제에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한국에서 조화까지 보내줘서 참 좋다고 생각한답니다. 위령제에 한국 사람들의 조화가 처음 왔을 때에는 유가족 분들이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반응이 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다만 올해는 누가 꽃을 보내줬나, 조화에 적인 한국 사람의 이름이 뭔가, 주민들이 꼼꼼히 읽어요. 궁금한 거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여기까지 꽃을 보내줬나 호기심도 있고요. 앞으로도 매년 위령제에 조화를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 띤토사 인민위원회 직원 띤
우비를 입고 저를 맞아준 사람들 중에는 학살 피해생존자 도반쯕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3살 아기였을 때 피해를 겪은 아저씨는 요즘 같은 우기철이 되면 당시 부상당했던 오른쪽 다리가 많이 쑤시고 아프고 하셨어요. 농사를 짓는
도반쯕 아저씨는 올해 환갑이 되셨는데 “오른쪽 다리보다는 이제 늙어서 그런지 무릎이 너무 아파”라며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한국에서 보내준 조화가 “뎁(đẹp, 예쁘다)”이라며 꽃을 볼 때마다 늘 기쁘다고 하셨어요. 음... 도반쯕 아저씨의 ‘뎁’이라는 말씀은 정말 진심처럼 들렸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는 조화가 예쁘게 보이는 그 마음의 결은 또 무엇일까…. 깊어가는 가을과 더불어 마음도 깊어지는 베트남의 봉화였습니다. 11월에 또 소식 전할게요.
* 9-10월 위령제에 조화를 보내주신 분들 (이름 가나다 순) *
<빈딘성 쯔엉탄 57주기 2023.09.24.>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전국겨레하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호아빈의리본
(제사용 과일 바구니 '권은구')
<주이응이어사 하인 할머니 집 방공호 학살 54주기 위령제 2023.09.27.>
권은구
국회의원 윤미향; 이석영, 양노자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카인럼 학살 57주기 위령제 2023.09.27.>
김두범
김은숙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윤미향 의원; 장정인, 이혜진
호아빈의리본
한베평화재단
<주이찐 학살 55주기 위령제 2023.09.29.>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호아빈의리본
<띤토 학살 57주기 위령제 2023.10.17.>
공동체은행빈고
김수연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산마을고등학교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이수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호아빈의리본
글| 권현우 활동가
사진| 각 지역 인민위원회, 호이안 꽃집, 꽝응아이시 꽃집
인터뷰|도안당땀바오 활동가
<빈딘성 쯔엉탄 57주기 2023.09.24.>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전국겨레하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호아빈의리본
(제사용 과일 바구니 '권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