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응아이성 카인럼학살 유가족 응오반끼엣

▶ 응오반끼엣(Ngô Văn Kiệt), 1956년생
▶1966년 9월 28일(양력), 꽝응아이성 꽝응아이시 띤티엔사 카인럼학살(Vụ thảm sát Khánh Lâm, xã Tịnh Thiện, TP. Quảng Ngãi, tỉnh Quảng Ngãi) 유가족
▶ 당시 10세였던 응오반끼엣은 한국군의 학살로 모두 84명이 목숨을 잃은 카인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당일 아침 9시 경, 한국군은 집과 방공호에 있던 그의 가족과 주민들을 끌어내 응우옌븡 할아버지 마당 옆의 논밭에 모은 후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져 학살을 저질렀다. 당시 응오반끼엣과 그의 막내 동생 응오반응오(생후 1개월 8일)은 어른들 틈에 끼어있어 총탄을 맞지 않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 응오뇨(76세), 할머니 후인티찌(72세), 어머니 응우옌티따우(45세), 남동생 응오못(5세), 그리고 고모 응오티리엔(44세)과 고모부 즈엉티(46세), 고종사촌 즈엉티비엣(10세), 즈엉티남(8세), 즈엉반본(3~4세), 고모의 뱃속에 있던 아기 등 총 10명의 가족과 친척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의 집과 가재도구는 한국군에 의해 모두 불타버렸다.
피해 당시 아버지와 누나 응오티럼(18세), 형 응오반머우(14세)는 마을을 떠나 있어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학살 피해 이후 당시 결혼한 상태였던 누나 응오티럼이 응오반끼엣을 키웠다. 막내 동생 응오반응오는 그의 넷째 고모가 키우려 했으나 젖먹이를 돌봐줄 이가 없어 남베트남군의 한 대위에게 돈을 받고 동생을 보내게 되었다. 학살 피해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가족의 학살 피해 사실과 막내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이 나 1년 뒤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는 2019년 3월, 누나 응오티럼과 함께 청와대에 보낸 청원서에서 억울하게 숨진 가족들의 무덤을 보수하는 일과 매년 열리는 희생자 제사를 한국에서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 2019년 3월, 구수정 촬영
▶ 꽝응아이성 카인럼학살 위령비
▶ 비고: 1.형 응오반머우는 “피해자인 내가 왜 당신들에게 구걸하느냐”며 청원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의 최고위급 당원으로 한국에 갈 기회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방문한 적 없고, 한국의 국비 유학생이 된 아들도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다. 한베평화재단은 한겨레21 보도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그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기사보기)
2.청원서 제출 당시 응오반끼엣은 희생자인 가족과 친척들의 나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그가 증언한 일부 희생자의 이름에도 착오가 있었다. 카인럼학살 유적 자료집에 수록된 희생자 명단을 바탕으로 그에게 다시 증언을 요청하여 희생자 관련 일부 정보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