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응아이성 카인럼학살 유가족 응오티럼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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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오티럼(Ngô Thị Lâm), 1948년생

▶ 1966년 9월 28일(양력), 꽝응아이성 꽝응아이시 띤티엔사 카인럼학살(Vụ thảm sát Khánh Lâm, xã Tịnh Thiện, TP. Quảng Ngãi, tỉnh Quảng Ngãi) 유가족

▶ 한국군이 마을로 처음 들어온 것은 9월 26일로 학살 사건이 있기 이틀 전이었다. 그날 응오티럼(당시 18세)은 다른 주민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도망쳐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카인럼촌의 뇨럼 마을에 남아 있던 그의 할아버지 응오뇨(76세), 할머니 후인티찌(72세), 어머니 응우옌티따우(45세), 남동생 응오못(5세), 그리고 고모 응오티리엔(44세)과 고모부 즈엉티(46세), 고종사촌 즈엉티비엣(10세), 즈엉티남(8세), 즈엉반본(3~4세), 고모의 뱃속에 있던 아기 등 총 10명의 가족과 친척은 한국군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사건 후 이틀 뒤에 응오티럼은 마을로 돌아왔는데, 이때 당고모부가 가족들의 시신을 묻는 것을 지켜봤다. 사건 현장에서 남동생 응오반끼엣(10세)과 막내 동생 응오반응오(생후 약 2개월)이 어른들 틈 사이에서 총탄을 맞지 않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는데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막내 동생이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 당시 응오티럼은 결혼하여 카인럼촌에 머물고 있었고 남편은 군대에 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남동생 응오반끼엣과 자신의 아들(당시 3살)을 키웠으며 넷째 고모가 막내동생 응오반응오를 돌보기 위해 데려갔다. 그런데 젖먹이인 막내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모가 남베트남군의 한 대위에게 돈을 받고 동생을 보냈다. 학살 사건 당시 이후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가족의 학살 피해 사실을 알게 되고 막내 아들이 팔려간 사실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병이나 1년 뒤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계속된 가족의 비극 속에서 그는 한국군이 어째서 가족을 학살한 것인지 그 이유를 물으며 원통함을 감내해야 했다. 
  2019년 3월, 그는 동생 응오반끼엣과 함께 청와대에 청원서를 보내 “크든 작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한국 정부는 우리를 도울 책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학살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 2019년 3월, 구수정 촬영


▶ 비고: 1.학살 피해 당시 마을을 떠나 있어 목숨을 구한 응오티럼의 다른 남동생 응오반머우(피해 당시 14세)는 “피해자인 내가 왜 당신들에게 구걸하느냐”며 청원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의 최고위급 당원으로 한국에 갈 기회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방문한 적 없고, 한국의 국비 유학생이 된 아들도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다. 한베평화재단은 한겨레21 보도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그의 목소리를 전했다. (기사 보기)
         2.청원서 제출 당시 응오티럼은 희생자인 가족과 친척들의 나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그가 증언한 일부 희생자의 이름에도 착오가 있었다. 카인럼학살 유적 자료집에 수록된 희생자 명단을 바탕으로 그에게 다시 증언을 요청하여 희생자 관련 일부 정보를 바로잡았다.